402호
2011
수행적인 12채널 사운드 설치
라우드 스피커, 진동 스피커, 호스텔 관리용 물품, 안내인
1시간 루프 (30분 플레이백, 30분 휴식)
층간소음과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주인공으로 삼은 <402호>는 내가 세 달간 머물렀던 한 아티스트 호스텔에서 진행되었다. 이 방에 머무는 동안 들은 건물 안팎의 여러 소리들이 녹음되었고, 그 중 많은 부분이 재연되어 30분 길이의 소음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이 소리들은 양 옆에 묵었던 이웃들의 흔적, 이 건물의 성격, 그리고 이 건물이 자리한 지역의 정체성을 들려주는, 소리로 쓰인 일기와도 같다. 관객들은 한 시간에 한 명씩 방으로 안내되어 침대 위에 앉아 한 사람만을 위한 극을 청취하게 된다.
이 퍼포먼스가 진행된 호스텔의 구조와 방음 정도는 몇 년 전 나와 함께 지냈던 한 하우스메이트와의 기묘한 동거를 상기시켰다. 생활 방식이 너무 달랐던 우리는 집 안에서 마주치거나 얼굴을 보게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런 시간이 길어져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덧 우리는 갑자기 마주치는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고, 이를 위한 소통 방식으로 서로가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벽 너머와 문 밖에서 들려오는 나의 동거인이 내는 각종 소리들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지금 집 안의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보고 듣는지, 오늘 입은 옷은 어떤 종류인지, 전화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언제 잠이 드는지, 언제 일어나는지, 그리고 소리의 원근과 질감을 통해 새삼 듣게 되는 내가 사는 공간의 구조와 재질의 특성까지. <402호>에서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그 소음을 만들어내는 이와 그가 위치한 공간에 대한 단서가 된다. 그리고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의 화자처럼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