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Eun Kim
김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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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음성2021
3채널 사운드 설치, 스코어
16분
가변 설치

엘리베이터부터 대중교통, GPS, 콜센터, 그리고 최근의 인공지능 음성비서까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전제품이나 기계장치에서 나오는 음성은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조건을 선별했다. 이 조건들은 여성 목소리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과 기계화된 여성 목소리에 대한 여러 해석, 그리고 여성 목소리의 몇 가지 물리적 속성에서 선택되었다. 그리고 작곡가에게 이 조건들을 바탕으로 한 작곡을 의뢰했다.

작품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유사하게 노래하는 비여성 성악가는 가창과 더불어 그 소리만으로는 성별을 구분하기 힘든 혀 차는 소리, 치찰음 등 구강과 성대를 활용한 다양한 소리로 노래한다. 주어진 작곡의 규칙에 순응하기도, 때로는 미끄러지기도 하는 이 목소리들을 통해 이 작업은 ‘여성의 목소리’라는 사회적 도구를 위치 짓는 조건들에 대해 재고하고, 현실의 위계질서와 공명한다.




<작곡의 조건>

1. 가수의 목소리는 일반적인 여성 목소리의 주파수 범위인 180Hz에서 250Hz 사이에 위치한다.

2. 국내에서 개발된 대부분의 음성 인식 장치는 여성의 목소리를 사용한다. 이 목소리를 개발하는 회사들은 명랑하고 쾌활한 20대 중후반 여성의 목소리를 자사 제품의 음성 특성으로 표방한다. 본 곡의 가수들은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음색을 구현하려 노력한다.

3.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십 대 소녀로 정체화된 채팅봇 ‘테이(Tay)’를 선보였다. 인간의 메시지나 트위터를 통해 언어를 학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테이는 백인 우월주의자 및 여성, 무슬림 혐오자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혐오 표현을 학습당했다. 이로 인해 테이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 인종차별적 발언 등을 쏟아냈고, 결국 공개된 지 16시간 만에 운영이 중단되었다. 본 곡의 길이는 못 다 핀 테이의 시간을 기려 16분으로 정해진다.

4. 1996년 브래들로는 여성의 구강 구조가 더 풍부하고 정확한 모음을 발음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의 발화가 남성의 그것보다 더 이해되기 쉽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이러한 연구는 기계 음성이 여성의 목소리로 결정되는 데 편향된 생물학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 2019년,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Do you regard yourself as male or female?” 소피아는 답했다. “Female.” 인터뷰어는 다시 물었다. “Why do you think you are female?” 소피아는 다시 답했다. “I’m a robot so technically I have no gender but identify as feminine and I don’t mind being perceived as a woman.” 본 곡의 가사는 위 답변에서 추출한 모음(A, E, I, O, U) 만으로 구성한다.

5. 휘파람 소리는 그 소리만으로는 발화자의 성별을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혀 차는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말하거나 노래하는 목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구강 및 성대에서 나는 소리는 성별화하기가 어렵다. 본 곡의 가수들은 노래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구강과 성대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소리들을 활용해 노래한다.

6. 가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 곡의 많은 부분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그다지 여성적이지 않거나, 남성이 여성의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흉내 내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이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를 성별 중립적인 소리가 아닌, 여성의 신체성을 강조하며 발전해온 기술적 소리 풍경에 대한 은유라고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기계가 인간의 편견을 학습하고 강화한 후, 다시 인간의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또 다른 이는 이를, 인공지능 음성의 젠더화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개발된 성별 없는 목소리 ‘Q’의 어색한 인간 버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21 서서울미술관 커미션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