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소음의 방문 
2018
싱글채널 비디오, 스테레오와 바이노럴 사운드, 헤드폰
12분 10초
가변설치

이 작업은 근현대의 시간을 통과하며 한국에 존재했던 대조적인 성격의 두 가지 소리*를 조명한다. 그 중 하나는 사이렌 소리이다. 정오 사이렌과 통행금지 사이렌으로 기억되는 이 소리는 식민시대와 미 군정, 전쟁과 독재의 시기를 거치며 낮에는 노동하는 국민의 일상적 리듬을 동기화하기 위해, 밤에는 치안 유지를 위해 작동했다. 이 중 더 강압적인 국가적 시간 규율로서의 야간통행금지는 개인의 신체적 공간과 시간을 통제하며 36여 년간 존재했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는 현존하는 가장 높은 붉은벽돌 망루가 서 있는데, 이 망루는 주민감시를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워졌고 해방 이후부터는 사이렌 타워로 기능했다. 특별히 이 지역에서 울려 퍼졌던 사이렌 소리는 붉은 망루의 확고한 존재감과 함께 기억되는데, 작업 속의 이야기는 이 붉은 망루에서 흘러나왔던 사이렌 소리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에서 시작되어 점차 통금 사이렌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또 하나는 라디오 소리였다. 통금 사이렌이 울린 뒤 어둠이 깔리면 숨어있던 청취자를 불러 모으는 이 소리는 때로는 남과 북 사이를 의도적으로 넘나드는 선전 방송이었고, 때로는 우연히 국경을 넘어온 정규방송 등의 전파였다. 반공의 시대에 장소적 경계를 흐리는 이 라디오를 듣는 것은 불법적인 일이어서 청취는 언제나 비밀스러운 개인적 차원의 경험이었다. 작업 안에서는 60년대 후반 간첩 활동을 하며 북쪽에서 남한의 방송을 들었던 어떤 이의 음향적 기억이 서술된다. 이렇게 국경을 넘나드는 라디오 소리는 당시 한 신문에서 ‘붉은 소음’ 이라 이름 붙여졌다.

하나의 붉은 소음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며 시간적 통제를 강제하면, 또 하나의 붉은 소음은 수평으로 침투하여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집단적인 청취를 강제하는 사이렌이 개개인의 삶에 억압의 기제로 작동하며 어떠한 흔적을 남겼고, 혼자서 몰래 듣는 라디오는 또 어떤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했을까.

나는 나의 현실적 지각영역을 벗어난 이러한 과거의 소리들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사이렌과 라디오 전파에 대한 기억과 당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뉴스, 인터뷰, 그리고 에세이에 등장하는 서술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이 자료들의 일부에서 발췌, 참조한 문장들을 서사적으로 영상 속에 배치했다. 텍스트는 화자와 시공간을 옮겨가며 사이렌과 라디오를 설명하고, 목소리와 음향효과, 필드레코딩등을 통해 재구성된 사이렌과 라디오 소리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교차한다.





*이 작업에 등장하는 두 가지의 소음 -사이렌과 라디오 전파-를 대조적으로 병치한 아이디어는, 임태훈의 논문 『국가의 사운드 스케이프와 붉은 소음의 상상력』(2011)에서 얻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