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Eun Kim
김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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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벽지음악
2014
사운드 퍼포먼스 시리즈



이 공연은 거대한 중고물품 시장이 있는 서울의 황학동 한복판에 자리한 솔로몬 빌딩에서 진행되었다. 황학동 시장은 온갖 오래된 사물과 볼거리로 가득찬 장소이다. ’최후의 시장'이라는 예명을 갖고 있는 이 곳은 사물이 그 쓰임을 다 하고 폐기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흘러들어오는 곳이다. 이 시장 골목 안 쪽에 우뚝 서 있는 부채꼴 형태의 솔로몬 빌딩 내부에 들어서면, 방문자의 눈을 홀리는 건물 주변의 상황과는 달리 뜻밖의 시각적 차단을 경험하게 된다. 이 건물 내부를 적극적으로 탐험하다보면 벽에 가려진 채 켜켜이 겹쳐져 있는 보이지 않는 작은 방들을 발견하게 된다. 황학동 중고시장의 전성기였던 과거에는 이 작은 방들이 모두 점포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서로 몸을 겹친 채 조용히 숨어있다. 이 작은 방들의 발견은 이내 건물 전체에 대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해, 문으로 가려진 채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부채꼴의 벽 뒤에서 건물을 감싸고 있는 베란다 등, 숨겨진 공간의 존재방식을 상기시켰다.

조각케이크 형태의 무수히 작은 방들이 나란히 이어진 채 부채꼴의 벽 뒤에 숨어 있는 1층, 문과 벽 뒤에서 끊임없이 1층과 6층 사이를 이동하는 작은 엘리베이터, 그리고 넓은 중앙을 둘러싼 다섯 개의 또 다른 방이 벽 뒤에 자리하고 있는 6층. 이렇게 시각성이 차단된 공간은 청각공간으로 다시금 정체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전의 맥락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감각될 수 있다. 나는 <401호>등의 이전 작을 통해서 소리라는 미디어가 비가시적 공간의 물리적 정체성과 장소성에 관한 풍부한 서사를 드러낼 수 있음을 경험했다. 벽과 목소리가 중심이 된 사운드 퍼포먼스를 구상하게 된 것은 이 건물이 담지하고 있는 강력한 청각공간으로써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연주자들은 서로 보거나 닿을 수 없는 공간에 몸을 숨기고, 들릴 듯 말 듯한 다른 연주자의 소리와 지휘자의 원격신호에 맞추어 자신의 연주를 이어가게 된다. 관객들 또한 연주자를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데, 오로지 소리로만 그들의 위치를 추적하거나 그들이 머무는 공간을 상상하고 해석하게 된다.